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
번역가가 무서워서 결계를 치고 번역을 하는 트윗이 화제가 되어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나도 그 트윗을 보고 개봉하자마자 혼자 보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시작한지 10분만에 관람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볼만하다.. 오컬트 영화라서 후반부엔 기괴한 오락영화(?)느낌으로 편하게 봤다.
스포일러 포함, 결말은 X, 해석있음
영화의 주인공들은 엄마 아빠 딸 아들로 이뤄진 전형적인 4인 가족이다.
맞벌이 부부라서 외할머니가 찰리(딸)를 돌봤는데 어느 날 노환으로 사망했다.
찰리(딸)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환영을 보기도 하고 비둘기 대가리를 이용해 뭘 만드는 등 끔찍한 이상행동도 한다.
애니(엄마)는 이것이 상실감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거라 생각하지만 걱정한다.
어느 날 사춘기 아들 피터가 파티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엄마는 동생도 데리고 가라고 한다.
피터는 내키지 않았지만 여동생을 데리고 파티에 간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찰리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발작한다.
찰리는 심한 땅콩 알러지가 있었는데 실수로 땅콩이 든 음식을 먹고 만 것이다.
피터는 찰리를 데리고 차를 몰아 급히 응급실로 향한다.
하지만......
숨을 쉬기 위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찰리가 그만 길가의 전봇대와 부딪혀
목이 댕겅 떨어져 나간다.
피터는 넋이 나간 채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집에 와서 가만히 밤을 지새운다..
다음 날.
차에 갔다가 딸의 목 없는 시체를 발견한 애니는 오열한다.
애니는 점점 히스테릭해지고 피터를 보면 죽일 듯이 달려든다. 그렇게 가족은 와해된다.
어느 날 피해자 모임이라는 이름의 심리치료모임에서 알게 된 조안이라는 여성이
주술을 통해 죽은 자와 소통하는 것을 보여주고 (분신사바 같은 방식)
애니는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찰리를 소환하는데..
과연 찰리는 응답해줄까?
감상
처음에 분위기 진짜 너무 무섭다. 몇분동안 미니어처 모형(주인공 애니의 직업이 미니어처 제작자) 비추면서
소름끼치는 음악만 틀어주는데 심장 쪼이고 무서워서 정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본편 들어가니 초반의 그 미칠듯한 공포는 덜했다. 사실 중간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초반에 퐉! 그리고 후반부에 파파팍 몰아치는 느낌이라 속도감 있고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어져 있다면 재미없을 수도 있다.
또한 장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오컬트라 완전한 몰입이 힘들다. 공포의 대상이 악마라는 것이 김빠질 수도..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유전이라는 숙명에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애니는 심리상담모임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는다.
굶어죽은 아빠, 다중인격을 가진 치매 엄마, 자살한 조현병 오빠.. 그러니까 집안이 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멀쩡해보였던 애니조차 딸의 죽음 이후 정신병에 가까운 엄청나게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인다.
(애니를 연기한 배우가 너무 연기를 진짜 끝장나게 잘해서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자식 보낸 엄마의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다. 폭주하다가 자신과 가족까지 파멸로 이끈다.
영화에서 정상인 사람이 두 명있다. 피터와 남편인데..
남편은 남남이니 당연히 제일 멀쩡하다.
피터는 애니의 피가 섞였는데도 정신상태가 멀쩡하다. 하지만 정신병 숙명은 벗어났지만
그에겐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미친 집안이다. 정신나간 외할매는 악마 숭배자였고 죽은 후에도 할매 동료가 찾아와 기어코 피터에게 악마를 집어넣고야 만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유전은 생물학적인 것(정신병력), 사회학적인 것(환경) 둘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피터는 부모가 백인임에도 인도사람처럼 생겼다.
생물학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할매가 제공한 환경때문에 결국 악마의 영매가 되는 운명에 놓인다.
<유전>을 보며 정말 무서웠던건 이 지점이다.
피터가 겪게 된 모든 끔찍한 일들이 발버둥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
넋나간듯 관쓰고 운명을 받아들인 피터의 모습에 여운이 남는다. 정말 비주얼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서웠던 영화.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오컬트 호러라는 장르적 재미도 살린 영화였다.
*왓챠,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
그런데 생각해보니 찰리 이름 혹시 외국 분신사바인 찰리찰리 챌린지에서 따온건가?그럼 너무 웃김ㅋㅋㅋㅋ
'문화&예술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고(Fargo, 1996) (0) | 2021.09.27 |
---|---|
아수라 (2016) / 더럽게 폭력적인 이야기 (0) | 2021.09.27 |
[시리즈물 리뷰] 헝거게임 : 더 파이널 (4) (0) | 2021.09.12 |
[시리즈물 리뷰] 헝거게임 : 모킹제이 (3) (0) | 2021.09.07 |
양들의 침묵(1991) (0) | 2021.09.02 |
댓글